'김정호'을 읽고 김정호 - 6 학년 1반 권찬혁 |
본관은 청도(淸道)이다. 자는 백원(伯元)·백온(伯溫)이고, 호는 고산자(古山子)이다. 출생
연도는 분명하지 않으며, 태어난 곳은 황해도 봉산(鳳 山) 또는 토산(兎山)이라고도 한다.
평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지리학에 정진하여 일생을 정밀한 지도와 지리서를 만드는 일
에 바쳤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30여 년간의 각고 끝에 1834년(순조 34) 《청구도》 2첩을
완성하였다. 이후 1857년(철종 8)에 전국 채색 지도인 《동여도》, 1861년(철종 12)에
《대동여지도》를 완성하여 교간(校刊)하였다.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전체를 그린 전도(全圖)로서 의의가
크다. 김정호는 조선 후기에 민간에서 활발하게 전사되었던 전국지도·도별지도와 국가가
중심이 되어 제작하였던 군현지도를 결합하여 군현지도 수준의 상세함을 갖춘 대(大)축
척 전국지도를 만들었다. 특히 《대동여지도》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가장 정확하고 정
밀한 과학적 실측지도로 평가된다. 이밖에 서울 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 등을 남
겼다.
또 지리지 편찬에도 힘써 《동여도지(東輿圖志)》(1834∼1844), 《여도비지(輿圖備志)》
(1853∼1856), 《대동지지(大東地志)》(1861∼1864) 등을 펴냈다. 《동여도지》와 《대동
지지》는 지역 단위로 지역의 특성을 기술하는 지역별 지지와 강역·도로·산천 등의 주제
별 지리학을 결합시킨 지리지로서 이전의 전국 지리지나 읍지에서는 예를 찾아보기 어려
운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그의 저작활동은 19세기 조선의 국토 정보를 집대성하여 구축하고 체계화하였다는 점에
서 국토 정보화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실천한 선각자였다. 그의 사망에 대해서는 《대동여
지도》를 흥선대원군에게 바치자 그 정밀함에 놀란 조정 대신들이 국가기밀을 누설하였다
는 죄를 물어 옥사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그가 만든 지도와 지리서가 보존되었다는
점, 그의 후원자였던 실학자 최한기와 고위 관리를 지낸 신헌 등이 연루되어 처벌받았다
는 기록이 없는 점 등으로 보아 신빙성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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